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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수 文學 散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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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시간전
 
8월 마지막 날
 
 
덕진 연못 연꽃들이 고개를
꺾었습니다
 
비에 젖지 않고 천둥 번개에 놀라지 않는
사바세계였습니다
 
매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숨 막히던 열대야는 맥없이 스러졌습니다
 
여름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짧았다. 어느새 마지막 날에 와 있다. 붙잡고 싶었던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속절없이 흘러갔다. 내일이면 바람은 서늘해지고 단풍은 골짜기를 따라 붉어질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것을 놓아주어야 한다.
 
백 년 묵은 백일홍나무 붉은 꽃들이
여름 앞에
국화 한 송이 올리면
 
여름은 지난여름이 되어 추억 속으로
자분자분 걸어갑니다
 
 
□ 詩作 Note □
 
8월의 마지막 날, 덕진 연못의 연꽃들이 하나둘 고개를 꺾었다. 한여름 햇빛을 받아 연못을 가득 채우던 꽃들이 이제는 한 철의 끝을 말하고 있었다. 비에 젖지 않고 천둥과 번개에도 놀라지 않던 연꽃의 시간도 결국 지나가고 있었다.
 
연꽃이 지는 자리에 매미 소리도 사라졌다. 밤마다 지붕을 달구던 열대야도 어느 순간 힘을 잃었다. 계절이 한창일 때는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막상 끝에 이르니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남았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뒤에야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못가의 백 년 묵은 백일홍나무에 남은 붉은 꽃은 마지막까지 여름빛을 품고 있었다. 그 붉음 앞에는 이미 가을의 기척이 와 있었다. 국화 한 송이가 여름 앞에 놓이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것은 계절의 교체를 알리는 꽃이면서, 떠나는 시간에 바치는 헌화이기도 했다.
 
계절은 어느 것도 붙잡지 않았다. 피는 것은 피는 대로, 지는 것은 지는 대로 자신의 시간을 다하고 오는 계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삶 또한 그러했다. 지나간 것을 붙잡으려 할수록 시간은 멀어졌고, 놓아줄 때 비로소 새로운 시간이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
 
시는 여름의 끝을 기록하려 한 것이 아니라, 끝이라는 순간에 숨어 있는 시작의 의미를 바라보며 썼다. 연꽃의 고개 숙임은 소멸이었지만 동시에 씨앗을 남기는 일이었다. 사라진 매미 소리는 침묵이었지만 가을의 소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빈자리였다. 백일홍의 붉은 꽃은 여름의 마지막 불빛이었고, 국화 한 송이는 다가오는 계절을 위한 첫인사였다.
 
여름은 지난여름이 되어 추억 속으로 자분자분 걸어갔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계절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는 것이었다. 시는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보내주어야 비로소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시간의 순리에 대한 깨달음을 담아냈다.
 
 
 
 
 
 
구월 첫날
 
 
구월이 오면 가을이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여름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바람은 가을 문을 두드립니다
 
구월 첫날
지난날의 고통도 지나간 사랑도 모두 잊어버리고
약속처럼
그대가 받아주세요
 
서늘해지는 만큼 깨끗해지고
높아지는 만큼 깊어지는
내 손 잡아 준다면
온기 하나로 나는 다시 살아날 테니까요
 
가을 들녘에서 꽃들이 왔던 길을 돌아간대도
오래도록
그대 가슴 속에서
지지 않는 가을이 되겠습니다
 
 
□ 詩作 Note □
 
계절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면서도 단호하게 찾아왔다. 뜨거웠던 여름의 잔상이 여전히 땅 위에 짙게 남아있어 아침저녁의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다. 순간 뺨을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서 분명한 ‘가을의 기척’을 느꼈다. 8월의 마지막 날과 9월의 첫날 사이, 작은 틈새에 서서 시를 쓰게 되었다.
 
시를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찾아온 계절의 변주를 받아들이고, 지나간 상처로부터 덤덤히 일어서고 싶었던 열망’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은 지독한 여름이었다. 타들어 갈 듯한 고통과 열병 같던 사랑, 그리고 서러운 후회들이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여름의 무더위가 지치게 하듯, 기억들은 끊임없이 소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구월의 첫날, 문을 두드리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깨달았다. 여름이 아무리 완강하게 버틴다 한들 결국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삶의 짙은 그늘과 고통 역시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구월이 시작되는 첫날을 단순한 달력의 넘김이 아닌, 내 영혼 ‘약속’으로 삼고 싶었다. 지나간 날의 아픔을 모두 내려놓고, 누군가가 혹은 나 자신이나 한 계절이 새 출발을 온전히 받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첫 문장을 적었다.
 
시를 써 내려가는 감정은 ‘쓸쓸함 속에서 솟아나는 투명한 온기’였다. 가을 하늘이 높아질수록 배경이 되는 공기는 서늘해졌다. 서늘함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의 불순물을 걷어내어 깨끗하고 깊어지게 만들어 주었다. ‘서늘해지는 만큼 깨끗해지고, 높아지는 만큼 깊어진다’는 구절을 적을 때, 마음이 투명하게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 속의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가을이라는 계절일 수도 있고, 고통을 이겨낸 모습일 수도 있다. 대상이 누구든, 마른 가지로 시들어가는 삶에 필요한 것은 체온, 즉 ‘온기’였다. 온기만 있다면 거친 세파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겠다는 간절한 고백이 시의 중심이다.
 
마지막 문장을 써 내려갈 때의 느낌은 아련하면서도 단단했다. 가을 들녘에 피어난 꽃들은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흙으로 돌아갈 터였다. 자연의 이치는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하지만, 삶의 진정성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이 진다 해도, 그대 가슴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가을로 남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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